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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내아이처럼 한가족처럼」제11회 가정위탁의 날 기념식 개최
2014-07-08 00:00:14
관리자 <> 조회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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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이처럼 한가족처럼」제11회 가정위탁의 날 기념식 개최

보건복지부장관표창 및 가족사랑 이벤트 등 진행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는 제11회 가정위탁의 날 기념식을 6월 27일(금) 오후 2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내아이처럼 한가족처럼 가정위탁"이라는 주제로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지순연 위탁어머니 등 위탁부모 12명, 공무원 2명, 상담원 2명, 봉사자 1명 등 총 17명이 가정위탁의날 유공자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또한 가정위탁사업 수기 및 그림 공모전 우수자 9명, 모범아동 5명에게도 장관상이 수여되었다.

이번 기념식은 가족사랑 이벤트, 그림자 공연, 라이트 댄스 등 다채로운 행사와 기념 퍼포먼스를 통해 참가자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 기획되었다.

아울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영미씨는 이번 기념식에서 가정위탁 홍보대사로 정식으로 위촉되었다.

가정위탁제도는 부모가 직접 양육할 수 없는 아동을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보호·양육하기 위하여 도입한 제도로서

정부는 11년간 가정위탁 활성화를 위해 가정위탁 양육보조금 지원, 가정위탁 상해보험, 가정위탁 아동심리치료비 지원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 가정위탁제도

    친부모가 직접 양육할 수 없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법적기준에 적합한 가정에서 일정기간 동안 위탁하여 양육하는 것을 말한다

    • 위탁보호 아동수 : 16,359명(‘ 10) → 15,486명(’ 11) → 14,502명(’ 12) →14,584(‘ 13)
    • 가정위탁 상 담 : 1577-1406(아이사랑양육)
  • 가정위탁의날 : 5월 22일
    • 친가정과 위탁가정 두(2)가정이 내 아이와 남의 아이 두(2)아이를 행복한 가정에서 잘 키우자는 의미임.

 

위탁부모 수기 - 우리에게 날아온 작은천사

위탁부모 서현실(50세)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서인지 길을 걸을 때면 향기가 솔솔 난다.

애기엄마에 나이가 많다손 치더라도 어느덧 성큼 다가온 봄 향기에 설레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에 나는 다른 생각을 한다.

우리 아가 보여줘야지~ 처음 인식하는 꽃일텐데 ^^

책에서 본 꽃이 있다고 웃으면서 뱅글뱅글 춤을 추겠지 ^o^

꽃들아 난 너의 향기보단 우리 아가 냄새가 더 좋단다.

우리 아가 소변냄새도 정겹게 느껴지고,

대변 냄새 맡으면 장이 건강한지~ 그게 더 기쁨이란다.

봐도 봐도 그리움이고 안을 때마다 느껴지는 포근한 이가 없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어.

나의 아기의 살내음 맛을 내 온몸이 기억하고 있고, 웃는 모습 보기위해 몸개그도 수십 번 할 수 있지...

너희가 있어 내 아가가 오늘도 즐거워 할 수 있겠구나 ~ *^^*

 

처음 은호(가명)를 봤을 때 우리에게 이렇게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주사랑 공동체에서 소개를 받고 은호와 은호의 엄마가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약간의 설레임과 함께 7개월이 되어가는 남자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의 어렵고 힘든 것들이, 그리고 나의 자유를 뺏기지 않을까하는 걱정, 혹시 업거나 안다가 내 다리나 허리가 아프면 어떡하나, 애기 키우는 것은 다 잊어버렸는데 우유는 어떻게 주고 무슨 교육을 시켜줘야 하나~ 등등등

짧은 순간에 내 머리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많은 생각이 왔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약속 시간이 되어 은호와 은호엄마를 보는 순간 나는 차라리 내 자신이 도망가고 싶어졌다.

키는 작은 것 같은데 몸무게가 10.8kg에 아토피도 있고 안아 봐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공갈 젖꼭지만 빨고 있는 아기~.

‘말도 안돼~ 우리 아인 12개월이 지나서도 10kg 이었는데 남자아이라서 그런가, 그리고 왜 이렇게 멍하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인가, 미안하지만 그냥 돌보는 것이 힘들겠다고 말해버릴까’

은호의 엄마는 내 생각을 짐작한 듯 은호를 낳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25살이면 아직은 어린 나이인데 아이와 같이 살아 보려고 애쓰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럼 3개월만 우리가 돌볼게요. 그 대신 직장이 쉬면 주말에는 꼭 아이를 보러 오세요.” 라고 맡아줄 것을 수락했다.

 

은호의 엄마는 2박 3일간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은호에 대해 이것저것 가르쳐 줬다.

 

첫째 날 저녁에는 내가 데리고 잤는데 생각보다 잘 지냈다.

 

둘째 날은 열이 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중이염이었다.

은호 엄마는 은호가 잘 걸렸던 병이 중이염, 감기, 폐렴, 장염, 아토피라고 했다.

혹시나 해서 나는 기저귀를 갈면서 몸 여기저기 살펴봤는데, 아토피가 조금 심한 것 빼고는~ 그런데 정말 많이 통통했다. 은호 엄마는 그 통통함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지만 나는 ‘내 몸은 언제쯤 적응되려나’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셋째 날 은호의 엄마는 가정위탁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가지러 광주 미혼모 시설에 다녀온다고 나갔다. 그리고는 연락이 끊겼다.

 

일주일 후 나는 할 수 없이 은호의 엄마를 찾기 위해 아이를 안고 파출소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하며 여러 가지를 알아봤는데, 파출소에서 나온 순간 아이가 내 눈을 피했다. ‘내 눈치를 보는 건가? 설마? ~ 아니겠지. 이제 7개월 됐는데...’

나는 곰곰이 내가 뭐라고 했는지 되씹어봤다. 은호의 엄마에 대해서 좋게 표현은 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또 한 번 내 눈을 피했던 적은 7개월 때 목욕을 시킬 때다. 혼자 목욕시키다 실수를 할까봐 남편이 오길 기다려 목욕을 시켰다. 남편과 나는 “ 진짜 우량아다. 힘들어 ~ ”했는데 목욕을 끝내고 우유를 먹일 때, 아이가 슬금슬금 내 눈을 피했다. 내가 다른데 보고 있으면 나를 쳐다보고 내가 보는 듯 하면 눈을 돌려 버렸다.

그 순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아인 나와 똑 같은 사람이구나 ~’

며칠 동안 엄마가 두고 가버렸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느라 은호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던 것이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은호가 이렇게 나와 처음 한 소통은 눈치 보기였다.

 

나는 은호를 24시간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마음 문을 닫아버렸는지 눈치는 보는데 웃거나 붙임성 있는 감정표현은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와 둘만 있을 때 나를 적개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첫째 아이 책에서 본 사자의 눈빛이었다. 원망과 경계 적개심이 가득한 눈 빛...

‘내가 예민해도 너무 예민한건가? ’

 

그러다 남편과 첫째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반응을 보였다. 남편에게는 아빠라고 가르쳐 줬더니 아빠라 불렀고, 첫째가 왔다 갔다 하면 눈으로 쫒았다.

은호엄마의 말로는 은호가 안겨본 최초의 남자가 남편이라고 했는데, 그 힘과 넓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빠에게 있으면 조금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몸도 힘들고 돌보는 것은 나였기에 내심 서운한 마음이 장난스레 들었지만 조금 인내하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쯤, 낮에 목욕을 시킨 후 낮잠을 재우려고 회전의자에 앉아 은호를 안고 있었는데, 노래를 부르며 은호 눈을 봤더니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보고 또 보고 계속 바라보더니 잠이 들었다.

나 또한 긴장의 끈이 뚝 끊어진 듯했다. ‘나와 너 사이 한 계단 가까워졌구나~ 맞지? ’

 

은호는 먹는 것에 대한 반응을 심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은호 엄마의 말로는 치즈도 그 자리에서 한 장은 너끈히 먹어 치운다고 했는데, 치즈뿐만이 아니라 우유도 항상 모자라 했다. 우유 양을 더 늘려야 할지~ 더 달라고 계속 울었다. 240ml 다섯 번 정도. 상담 결과 너무 많다고 했는데 우유는 네 번으로 하고 이유식으로 조절했다.

중간 중간 장염과 입 주위의 아토피, 기저귀 발진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따라서 아이 주전부리도 조심해서 선택을 했고, 키는 크도록 하면서 몸무게는 유지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은호를 관찰했다.

 

그러다 공갈 젖꼭지를 입에서 떼어 내면 아이가 시끄럽게 종알거리고 움직임도 많아지는데 젖꼭지를 물리면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는 걸 알았다.

공갈 젖꼭지 빼기 작전을 세웠다. 더 많이 놀아줘야 했고 더 많이 안아주고 얼러주고 노래불러주고 얘기하고~ 남편과 첫째도 동참하여 은호와 놀았다.

처음에는 젖꼭지를 달라고 칭얼거리더니 얼마 후 정말 시끄럽게 의사표현을 했고, 일어나 기어 다니기 시작하더니 전동차 위에도 기어 올라가고 누나가 타는 미끄럼틀도 누나 따라 기어 올라갔다. 몇 날이 지나서는 미끄럼틀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 쭉 미끄러져 내려왔다.

난 얼마나 놀랐던지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걷지는 못하지만 기어서는 어디든지 갔다. 나는 은호가 어디서 떨어지거나 다칠지 몰라 눈을 뗄 수가 없었고, 낮잠뿐만이 아닌 밤잠도 줄어들어 집안일도 대충 하던가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했다. 간이 콩닥 콩닥 할 일도 있었고 아파서 응급실에도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너무 힘들어 중간에 공갈 젖꼭지의 유혹도 있었지만 결국은 주지 않아도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

 

말도 맘마, 아빠, 어부바는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엄마 대신에 어~ 어~ 였다.

‘어~ 어~는 모든 의사 표현일 때 쓰는데 왜 엄마는 못하는 거야 ’ 엄마라고 해보라고 해도 웃으면서 절대 안했다.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지’ 대신 남편은 첫째 아이와 다르게 아빠를 유독 따르면서 “ 아빠, 아빠” 하는 것이 너무 이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말로 ‘아빠’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잘해서 보는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키운건 난데~) 한번만 엄마 해봐 하면 더 크게 “아빠”했다.

 

 

은호는 내가 몇 시간 정도 일 때문에 떼어 놓고 나갔다 오면 또 의사표현도 안하고 나를 멍하게 처다 보고, 열이 나고, 아프기까지 했다.

나는 은호의 눈빛을 나 나름대로 저건 배신과 절망의 눈빛이라고 해석했다. 아이의 힘든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과민반응이라 했지만 나는 은호의 눈빛을 읽을 수 있음에 더 자신했다.

남편과 나는 15개월 정도 되면 어린이집에 잠깐씩 보내려는 것을 유보시키고 내가 계속 돌보는 것으로 했다.

 

남편은 남자답게 은호와 놀았는데 은호는 자신이 장롱에서 떨어질 때의 우리의 놀라는 표정과 긴장하는 것을 제일 즐겼다. 공 던지기, 이불에 뉘여 놓고 흔들흔들 해주는 것도 꽤나 좋아했고 지금은 남편과 나와 첫째 딸이 은호를 이불에 올려놓고 이불을 튕겨 주면 올라갔다 떨어지는 느낌을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즐긴다.

 

나는 엄마로써 훈육하며 책을 읽고 체험을 시키거나(콩에 관한 책을 읽으면 콩을 보여주는 식)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고 첫째 딸은 아이로써 신나게 숨바꼭질에 술래잡기 말타기 놀이 등등등 많은 놀이를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놀았다.

 

은호는 12개월이 지나면서 걷기 시작하더니 밖으로 나가자고 어~ 하며 신발도 가져오고 가방도 끌고 왔다. 밖에 나갈 때만큼은 먹는 것도 잊고 신나게 놀았다. 모험심이 강하고 관찰력도 좋아 새로운 놀이는 시도도 해보고 책에서 본 것은 아는 체도 했다.

잘 먹었지만 많이 놀아서인지 몸무게는 계속 10.5kg ~10.8kg 사이가 유지 되었고, 14개월이 되었을 무렵에는 먹는 것에 취향이 생겨 거절하기도 했다.

배가 부르면 뱉어 내 버리기도 했고, 먹는 것 보다는 놀이나 책 읽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나는 너무 기뻐 자랑하듯이 사람들에게 “이제 잘 안 먹어요” 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 엄마” 했다. 처음 엄마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기뻐 " 꺄 ~ 아 " 비명을 지르자 은호도 너무 신나하며 계속 엄마, 엄마 했다. 은호는 계속 나를 기쁘게 하고 돌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감정 표현에 있어서나 자존감은 이제 12개월이 된 아이 같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첫째 아이에게 부탁을 했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바탕; font-size: 11pt; mso-font-width: 100%;" 1"="" bgcolor="#E9E9E9">